■ 모시장터 / 논을 갈아엎는다.
■ 모시장터 / 논을 갈아엎는다.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2.09.29 10:53
  • 호수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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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1. 데자뷰

2005년에도 농민값은 개사료 값만 못했다. 농민과 한 마디 상의 없이 정부는 쌀 의무수입을 결정하는 국제 협상을 완료했다. 전국의 시군청 마당에는 항의하는 나락 적재가 이어졌다. 아랑곳없이, 1123일 관료와 정치인들은 농민들 주장을 외면한 채 국회 비준을 마쳤다. 전국농민대회 과정에서 농민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한 명은 경찰 폭력으로 죽었다. 경찰 폭력으로 농민이 죽었다는 사실을 국가가 인정할 때까지 군청 앞 쌓아 놓은 나락 옆에서 한 달을 더 보냈다. 그해 겨울 눈이 잦았다. 2005년이 다 저물도록 농성장 아침마다 적재된 나락 위로 쌓인 눈을 치웠다. 억울한 죽음만은 막았지만, 개방농정으로 비틀어진 키를 바로잡진 못했다.

20149월 서천군 농민회는 누렁 방울이 막 앉기 시작한 논 800여 평을 갈아엎었다. 쌀 관세화 협상으로 불어닥칠 쌀 수입 전면 개방을 막아내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오래전부터 정부의 농업정책에는 발전과 전망의 내용이 없었다. 오직 희생과 그에 따른 대책뿐이었다. 대기업 발전의 낙수효과와 핸드폰, 반도체 수출한 돈으로 농업을 발전시키겠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다 자란 벼를 갈아엎는 결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수확을 코앞에 둔 논을 어느 농민이 멀쩡한 정신으로 갈아엎겠는가! 누구는 장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구석구석에서 저 미친놈들!” 손가락질 견디기가 어디 만만하겠는가! 절실했다. 개방농정이라는 미친 방향을 반드시 막아내야 식량주권도, 농민의 생존권도 보장된다고 우리는 주장했다.

2022, 다시 논을 갈아엎는다. 죽어서도 막을 수 없고 논을 갈아엎어서도 막을 수 없었지만, 45년 만에 쌀값 최대 폭락! 두 배 가까이 뛴 영농비! 쌀농사 지어 십 원 한 장 손에 잡힐지 모르는 현실 앞에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보다 더 험상궂게 인상을 쓴다. 전보다 더 많이 갈아엎는다. 트렉터만큼은 첨단 기계공업 발전에 맞춰 더 크고 더 스마트해졌으나 모인 사람들 등짝은 부쩍 굽어보인다. 구호를 따라 외치는 목청에는 기침과 쇳소리가 낀다. 예전만큼 술병도 많이 나뒹굴지 않는다. 단지, 논을 갈아엎는 이유 하나만 달라지지 않았다.

2. 자괴감

자괴감이란, 반복되고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지쳐 스스로 부끄럽고 괴로워지는 지경에 이른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객관적 원인과 해결 방법이 분명 있겠지만, “이제는, 질렸다.”는 말일테다. 몇 가지 쓰임새를 보자. 국제무대에 선 대통령이 새끼’, ‘쪽팔려서같은 말로 물의를 빚고, 이를 바보같이 해명하는 정치를 볼 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는 표현을 한다면 아주 적절한 사용이라 할 수 있다. 도무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당신하고 결혼한 내가 미쳤지.”라고 할 말을 줄여서 자괴감이 든다.”고 한다면, 직접 겪어 본 당사자로서, 아주 경제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해마다 변신의 몸부림을 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낀다.”고 할 때, 중년의 남성분들은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똥값이 된 쌀값 때문만은 아니다. “생산비 보장하라!”, “농민 생존권 보장하라!”는 구호를 넘어서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대전환 시대의 주역으로서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 농민들은 기후 정의를 실현하고 인간의 존엄과 건강한 삶을 위해 더 나아갈 수 있다. 세계 어떤 곳의 굶주림에 관해서도 연대하고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맞서 더 치열하게 투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농민들은 식량 주권을 실현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생산비 보장의 굴레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여년 째. ? 우린 아직도 그대로인가?

3. 밥 한 공기 300원을 농민에게!

2022년 산지 쌀값은 작년 대비 25% 이상 하락하였다. 관련 통계가 조사된 1977년 이후 가장 큰 하락세이다. 같은 기간 면세유, 농자재 가격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농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불리할 때는 시장의 논리로 핑계 삼지만, 쌀값은 줄곧 정치적으로 관리해왔다. 이중곡가제로, 수입개방으로, 목표가격으로, 시장격리제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쌀값에는 언제나 정부가 직접 개입해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공공비축미 45만 톤과 시장격리곡 45만 톤 합쳐 수확기에 90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락세가 멈추기는 하겠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시장격리만으로 쌀값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1년 내내 확인해 왔다. 양곡관리법을 개정하여 쌀 생산비가 보장되는 공정한 목표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쌀 생산비에 근거하여 적어도 밥 한 공기에 300원은 농민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의 농업 정책으로 보장하라는 주장이며 또한 국민들께서도 인정해 주십사 드리는 호소이다. 농민들을 구제하고 농업과 농촌을 더 크게 쓰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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