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당포구 용왕제 전통 잇는
용당포구 용왕제 전통 잇는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3.02.06 06:18
  • 호수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천군어민회 대풍어제’ 열려
▲5일 서천군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용왕제
▲5일 서천군수협 위판장에서 열린 용왕제

장암리의 전망산과 장암진성이 군사적 요충지이자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면 용당포는 해양문화와 내륙문화가 만나는 접점이었다.

용당포는 용당산 아래에 있었던 포구이다. 용당산은 용의 머리이고 성주리 쪽으로 올라가는 맥은 용의 몸통이다.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 용당산인데 당집이 있었다. 용의 머리에 당집이 있다 해서 용당이란 이름이 나왔다. 이곳 사람들은 용댕이라 불렀다.

지금의 원수2리 용당산 아래의 마을이 용당리이며 이곳에 있는 용당진, 또는 용당포는 서천에서 가장 큰 포구였다. 예로부터 군산을 오가는 나룻배가 있었으며 1960년대 초까지 도선장은 이곳에 있었다.

3대가 왔다갔다 하면서 60년대 초까지 사람들을 실어날랐다. 용당포는 장항의 중심, 서천의 중심가였다. 금융조합도 여기에 있었고 시장도 장항중학교 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구장터라고 하는데 장항중학교 담 뒤가 장터였다. 어선이 닿고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주변은 천혜의 어장이었다. 참게, 황복, 뱀장어가 지천이었다.

용당산 당집에서 용왕제를 지냈다.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 등의 문헌에도 기록되고 있는 용당진사(龍堂津祠)는 바로 이를 가리킨다. 백제시대 기록은 없지만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정부가 주관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용당단이라는 제단이 있었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때 웅진명소(熊津溟所)로 지정돼 용왕제를 지냈으며 웅진에서 향과 축문이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도 지냈다고 전한다.

▲원수2리에 있는 용당산(뉴스서천 자료사진)
▲원수2리에 있는 용당산. 일제시대에 도로를 내면서 용의 머리 부분이 잘려있는 상태이다.(뉴스서천 자료사진)

이러한 용왕제의 전통은 서천군어민회의 정월 대보름 풍어제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장항 물량장에서 풍어제를 지낼 때면 용당산에 먼저 올라 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이러한 전통이 끊어졌다.

지난 5일 오전 장항항물양장 위판장에서 서천군어민회 대풍어제가 열렸다. 서천군어민회(회장 전두현)와 서천군수협이 주최하고 창선리 마을이 주관한 이날 풍어제에는 어민들이 참석하여 무사항해와 풍어를 빌었다.
전익현·신영호 도의원과 김아진 서천군의회 부의장이 어민들과 함께 했으며 김기웅 군수가 참여해 격려사를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