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시는 온통 초록빛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피부, 눈, 입술도 초록빛이었고, 하늘도 초록빛, 햇빛마저 초록빛이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에메랄드 시에 도착한 도로시와 토토,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가 마주한 에메랄드 시는 온통 초록빛의 세상이었다. 에메랄드 시에 들어가려는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초록빛 남자는 초록빛 상자 속에서 초록빛 안경을 건네주었다. 에메랄드 성 안은 여기보다 너무 눈이 부셔 안경을 쓰지 않으면 눈이 멀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초록색 남자는 안경이 벗겨지지 않도록 자물쇠까지 채웠다.
그러나 에메랄드 시는 조작된 도시였다. 전말은 이러하다. 누구도 본 적 없지만 모든 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의 정체는 열기구를 타고 가다가 유연히 이곳에 추락한 전직 서커스 단원이었다.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오자 이 나라 사람들은 하늘이 내려준 위대한 자라고 믿었고, 나쁜 마녀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줄 마법사로 믿게 되었다. 그리고는 바로 이 나라의 왕으로 모셨다. 난생 처음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를 본 오즈는 사람들이 믿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고 왕이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이 사기 행각을 벌인다. 서커스단에서 쓰던 도구와 복화술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모든 것을 들어주는 마법사인 양 연기를 한다. 그리고 에메랄드로 성을 만들고 길을 닦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이 나라 사람들이 모든 것이 초록빛이라고 믿도록 초록빛 안경을 씌웠다. 벗겨지지 않도록 자물쇠까지 채워서 말이다. 그러나 에메랄드 시의 모든 것은 초록빛이 아니었다. 초록빛 안경을 벗으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나라일 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초록빛 안경을 쓴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에메랄드 시에 사는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초록빛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부시게 특별해서 자신들의 나라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전부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경을 벗으면 평범한 나라였던 것처럼 다양한 빛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실재하는가?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마법사가 채운 초록빛 안경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시사점을 준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감소, 환경오염과 파괴로 전 지구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원의 활용과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을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인 태양, 대기, 바다, 토양을 이용함에 있어 다른 생물들에 대한 배려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쓴 안경은 철저하게도 인간중심 빛깔의 안경인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빛을 본 순간부터 안경이 씌워진 체 태어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세상을 어떠한 편견이나 왜곡 없이 온전히 볼 수 있는 로크가 말한 타블라 라사(tablua rasa)처럼 투명한 안경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현실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투영된 빛이 낀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기에 채워져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다. 자물쇠로 잠겨있어 벗지 못할 안경이라면 내가 쓴 안경이 초록빛인지 빨간빛인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또한 모르겠다면 최소한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 자원의 보고로서 미적, 휴양 목적이나 인간의 사용을 위해 통제되고 관리할 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생각 대신 인간과 무관한 생태중심적 가치에 주목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