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어려서 공부는 인생의 설계도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어려서 공부는 인생의 설계도
  • 송우영
  • 승인 2023.08.24 14:49
  • 호수 11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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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우영의 고전산책 / 어려서 공부는 인생의 설계도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효도의 대명사로 알려진 증자는 아버지로 인해 어린 나이에 억지로 공부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한 것도 아니다. 스승 공자님과는 46세의 나이 차이가 나며 논어선진편 11-17문장에 따르면 늘 아둔하다고 야단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논어 주석에서는 아둔함이 오히려 약이 되어 증자가 대학자로 성공할 수 있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증자라는 인물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단정적으로 말해도 될 만치 무게감 없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공자님의 학통을 후대에 전한 대체불가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증자의 직계 제자가 공자님의 손자 자사공이시다. 자사공께서는 공자님의 아드님이신 공백어의 아들로 중용책을 썼으며 그의 제자의 제자가 맹자이다. 공맹사상이라 하여 공자님 학통의 뼈대를 세우고 잇게 한 이가 증자이다.

증자는 생전에 두 권의 책을 썼는데 효경대학이 그것이다. 효경은 경의 반열에 오른 책이고 대학은 사서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모두다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책이다.

인류는 흔히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두 권의 책을 말하곤 하는데 공자님의 논어와 맹자의 맹자가 그것이다. 공자님의 논어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거의 정치서에 가깝다. 그리하여 일반인이 읽기에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용의 대부분이 지방관아를 다스리는 목민관의 자세, 관료들의 처세와 술수, 재상들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다. 이런 까닭에 조선 사대부가의 아들들은 아무리 늦어도 15세 이전까지는 논어가 읽혀져야 했다.

삼성가의 창업주 호암공의 경우는 6-7세 무렵에 훈장을 독선생으로 모시고 논어를 읽었다 한다. 현대의 창업주 아산공의 경우는 9세 때 마을 서당에서 대학 책을 읽었다 전한다. 일반적으로 조선 사대부가에서는 늦어도 15세 이전까지는 대학이든 논어든 이미 읽었어야한다. 거유 퇴계 이황 선생께서도 다소 늦은 나이인 12세에 논어를 읽은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이는 유학이 말하는 도덕과 윤리 그리고 치국의 도를 어려서 몸에 습관처럼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다.

증자의 대학 책을 기준하여 볼 때 유학의 처음과 끝은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이다. 여기서 중요한 열쇳말은 수신修身이며, 평천하平天下의 출발은 몸을 닦는 도덕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공부를 도덕에 종속시키는 수직적가치관이라는 억지스러움이라는 점에서 수평적 사고를 요하는 현대의 교육에서는 다소 갸우뚱하게 여길 수도 있으나 오히려 좀더 광의적 함의에서 공부와 도덕을 병발적竝發的인 것으로 받아들여 수평적사고로 이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하겠다.

지금 세상이라고 해서 공부가 별반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엉덩이에 옹이가 박힐 만치 앉아서 그냥 무작정 알 때까지, 또는 막연하지만 다 외울 때까지, 또는 손가락 마디가 부러질 만큼 쓰고 또 쓰면 된다. 더 쉽게 말해서 공부는 견디는 거다. 한자로는 극기克己이다. 풀어쓰면 놀고 싶은 나와 싸워 이긴다는 말이다.

어려서의 공부는 인생의 설계도와 같은 거다. 물론 사람살이가 어찌 설계도면처럼 되랴마는 어려서의 공부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부하는 자는 놀려는 자보다 훨씬 강하다. 왜냐면 공부하고자 하는 분명한 명분이 있어서다.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오롯이 공부에 몰입해서 청춘을 망가뜨리지 않고 고스란히 스무 살로 넘어왔다면 그것도 멋진 일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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