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 (81)의대병(衣襨病)
■ 박일환의 낱말여행 / (81)의대병(衣襨病)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4.02.28 14:37
  • 호수 1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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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세상에는 많고 많은 질병이 있지만 그중에는 특별히 기이하다 싶은 질병도 있다. 아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병명인데, 정말 저런 병이 있을까 싶었다.

의대병(衣襨病): 옷을 입으면 견디지 못하는 병.

옷과 관련된 뜻을 지닌 의대로 국어사전에 두 낱말이 나온다.

의대(衣帶): 옷과 띠라는 뜻으로, 갖추어 입는 옷차림을 이르는 말.
의대(衣襨): 1. 임금의 옷을 이르던 말. 2. 무당이 굿할 때 입는 옷.

의대병에 쓰인 의대(衣襨)는 두 번째 낱말에 해당한다. 낯설게 다가오는 글자인 ()’는 중국에서 건너온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로, ‘衣襨외에는 쓰인 용례를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의대병은 현대인과는 상관이 없고, 무당 아니면 임금과 관련한 병이라는 얘기가 된다. 의대병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 세자 이야기가 나온다. 사도 세자는 옷 입는 걸 너무 힘들어했으며, 옷을 찢거나 불에 태우기도 했다. 그래서 옷 한 벌을 입히려면 열 벌에서 스무 벌을 준비해 놓아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시중드는 궁녀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옷을 입지 못했고, 심지어 궁녀를 죽이기까지 했다. 일종의 강박증에 해당하는 정신질환이라고 하겠다.

사도세자가 이런 강박증에 걸리게 된 이유로 내놓은 추측 중에, 옷을 입으면 부왕인 영조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 거라는 설이 있다. 영조는 사도 세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호된 질책을 가하곤 했다. 대리청정을 하며 세자에게 정사를 맡긴 뒤에도 매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신하들 앞에서 망신을 주곤 했다. 실록에 나오는 기록들을 보면 거의 학대라고 할 정도로 세자를 가혹하게 질책하고 몰아붙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억눌림이 사도 세자로 하여금 정신분열에 이르도록 했을 거라는 얘기인데,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보인다.

의대병이라는 낱말은 사도세자 한 명에게만 해당하는 병명이다. ‘衣帶가 아닌 衣襨라는 한자 표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 중에도 옷 입는 걸 꺼리거나 못 견디는 병에 걸릴 수는 있다. 그런 병을 일반인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한자 표기를 衣帶病이라고 해야 한다. 더구나 조선 시대에 사도 세자 말고는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이 없고,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므로 앞으로 쓸 일도 없다. ‘의대병을 표제어로 올리고 풀이할 때 사도 세자가 앓았던 정신질환이라고 해주었어야 한다.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출되어 있다. 사도세자가 난폭하고 잔인무도한 악행을 너무 많이 저질러서 영조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쟁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룬 소설과 드라마, 영화가 꽤 많이 나왔다. 각자 취하는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지우거나 왜곡하면 안 된다. 사도 세자는 정신분열증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궁녀와 노비를 죽였고, 심지어 자신의 후궁인 경빈 박씨마저 죽였다. 경빈 박씨가 죽은 게 바로 사도세자의 의대병 때문이며, 사도세자의 옷을 입히던 도중 심기를 거슬려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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