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역사에서 국가와 국가 혹은 세력자들끼리 동맹을 맺는 일은 흔했다. 동맹을 나타내는 여러 용어 중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특이한 동맹 하나를 소개한다.
삽혈동맹(歃血同盟): <역사> 백제가 망한 뒤 신라 문무왕 5년(665)에, 문무왕이 중국 당나라의 사신 유인원, 전 백제 임금의 아들 융(隆)과 함께 웅진 취리산에서 한 맹세. 신라의 팽창을 억제하여 자기 나라의 지배하에 두고자 한 당나라의 의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전 백제 왕자 융을 웅진 도독으로 삼아 그 선조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봉토를 지키며, 신라와 백제가 오랜 원한을 풀고 서로 화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였다.≒삽혈지맹.
‘삽혈(歃血)’이라는 말에 대한 풀이가 없는데, 한자를 보면 피와 관련한 듯하지만 삽(歃)이라는 한자가 어려워서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삽혈’의 뜻부터 다시 찾는 수고를 해야 한다.
¶삽혈(歃血): 예전에, 굳은 약속의 표시로 개나 돼지, 말 따위의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시거나 입에 바르던 일.
삽혈은 보통 명사이지만 삽혈동맹은 하나밖에 없는 고유명사처럼 취급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대로 하자면 삽혈동맹은 신라 문무왕 때 맺은 게 유일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 춘추시대에 삽혈동맹을 맺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삽혈동맹의 풀이를 표준국어대사전처럼 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삽혈동맹을 맺은 사례가 여럿이라는 건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임금이 마암(馬巖)의 단(壇) 아래에 가서 좌명공신(佐命功臣)과 더불어 삽혈동맹(歃血同盟)하였는데, 제복(祭服)을 입었다.(태종실록 1권)
나중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은 거사에 참여한 공신들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서약을 받을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해서 치른 게 마암의 단 아래서 행한 삽혈동맹이었다. 중종 역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반정을 이끈 정국공신(靖國功臣)들과 삽혈동맹 의식을 치렀다.
전라북도 마이산 도립공원 가는 길에 용바위가 있고, 그 앞에 ‘호남의병창의동맹지(湖南義兵倡義同盟趾)’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거기 쓰인 문구의 앞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호남의병대장 정재 이석용(靜齋 李錫庸)이 해산 전기홍(海山 全基鴻)과 함께 호남 의남아(義男兒) 500여 명을 규합하여 황단(皇壇)을 쌓고 천지신명께 국권 회복을 빌며, 군율을 세우고 대오를 정비하여 삽혈동맹(歃血同盟)의 의로운 깃발을 꼽았던 호남의병창의의 터다.
이 기록에 나오는 의병들이 거사를 한 건 1907년의 일이다. 삽혈동맹이 군웅이나 제후 혹은 왕과 신하 사이에만 이루어졌던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온 강황이 기록한 『간양록(看羊錄)』에 일본 군벌들도 삽혈동맹을 맺었다는 말이 나온다. 혈서(血書)니 혈맹(血盟)이니 하는 말들이 있는 것처럼 맹세를 하거나 동맹을 맺을 때 피를 동원하는 건 피가 목숨과 연결된 강렬한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물이기 때문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