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시황제가 천하통일 후 시황제가 되기 전의 일이다. 그냥 진나라 왕일 때 사건으로 천하통일해가는 과정에서 당시 이미 망해버린 위魏나라 왕제 안릉군安陵君에게 사신을 보내 청하기를 다른 곳의 땅 500리를 줄 터이니 안릉 땅 사방 오십 리와 교환을 하자고 했다.
안릉군은 당저唐且를 보내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시황제가 되기 전의 진왕은 크게 노하여 말한다. 천자의 진노를 모르는가. 당저唐且가 모른다고 하니 진왕은 일갈을 한다. 천자가 진노하면 죽은 자의 시체가 일백만 명에 이르고<사자백만死者百萬> 그 피가 흘러넘치기를 천 리에 이르니라.<유혈천리流血千里>
당저가 되물었다. 선비가 분노하면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이에 진왕은 빈정대면서 말한다. 선비가 분노해봤자 모자를 땅에 패대기치며 맨발로 뛰쳐나아가 씩씩거리다가 종국에는 다시 돌아와 머리를 땅이 찧으며 용서를 구하는게 고작아니겠는가.
그러자 당저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용렬한 사내가 화를 냈을 때나 하는 짓이고요. 선비가 분노할 때와는 다르지요. 무릇 전저專諸가 오왕吳王 료僚를 찌르려 하니 혜성彗星이 달을 침식侵蝕하였고 섭정聶政이 한괴韓傀를 찌르려 하니 흰 무지개가 해를 뚫었으며 요리要離가 경기慶忌를 찌르려 하니 독수리가 궁전宮殿 위를 맴돌았소. 이 세 사람은 모두 선비입니다. 가슴 속에 품은 분노를 미처 꺼내기도 전에 하늘의 징조가 먼저 보였던 겁니다. 이제 나까지 모두 합하면 네 사람이 되니 만약에 이렇게 선비들이 분노하면 시체는 진왕과 나 둘이 꼬꾸라져 있을 것이며<복시이인伏屍二人> 진왕과 나의 피로 인하여 유혈이 낭자하기가 고작 다섯 걸음 안에 불과하겠지만<유혈오보流血五步> 천하는 상복을 입게 될 것입니다.<천하호소天下縞素> 그러더니 당저는 품에서 칼을 뽑아들고는 진왕의 목줄기를 향해 치달으니 진왕은 벌벌 떨면서 무릎을 꿇고 빈다.
여기서 받아낸 약속이 천하를 다 무너뜨려도 안릉땅 사방 50리는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훗날 진나라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했고 한韓나라 위魏나라 모두 멸망했으나 그 사이에 껴있는 안릉군의 땅 사방 50리와 그 안의 백성들은 무탈했다. 이 모두가 당저가 진나라 시황제를 설득한 결과이다.<전국책戰國策 7篇 위책魏策47장>
일국의 신하든 향리의 촌부 백성이든 기회가 주어져 군주를 만나 설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왜냐면 설득에는 반드시 평소 공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라 함은 학교 성적을 말함이 아니다. 공자왈 맹자왈로 대표되는 경전에 대한 글공부를 말함이다. 요즘이 어느 시댄데 운운하며 케케묵은 공자왈 맹자왈 공부를 따지느냐며 혹자는 쓸데없는 소리라며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그게 그렇지가 않다는 게 세상살이이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그런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안 그러면 천금의 기회를 아무 소득 없이 날려버릴 수가 있어서다. 설득을 하려면 누군가 앞에 서야하고 또 설득을 하려면 누군가 앞에서 말을 해야 한다. 논어 계씨편 16-13문장에는 남 앞에서 말하는 법과 남 앞에 서는 법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불학시不學詩> 남과 말을 할 수 없느니라.<무이언 無以言> 또 예를 공부하지 않고서는<불학예不學禮> 남 앞에 설 수가 없느니라.<무이립無以立> 고래로 시를 읽은 사람은 말이 곱고 아름다우며 예를 읽은 사람은 몸가짐이 바르고 절도에 맞는다.”
당나라 시인 왕지환王之渙은 자신의 5언절구 시, ‘관작루에 올라登觀雀樓’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지는 서산에 기대어<백일의산진白日依山盡> 황하는 바다로 흐르나니<황하입해유黃河入海流> 천리 밖을 보려는가<욕궁천리목欲窮千裏目> 그렇다면 한층 누각을 더 올라야 하리<경상대청루更上臺層樓>”
저마다의 해석이야 읽는 독자의 몫이겠으나 천리 밖을 보려거든 누각을 한층 더 올라가라고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