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후배 시인이 한림면에 있는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에서 자신의 첫 시집을 가지고 시 낭독회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얘기를 듣는 동안 ‘꿈차롱’이라는 말이 예쁜 어감으로 다가왔다. ‘차롱’은 ‘채롱(-籠)’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란다. 그러니까 ‘꿈차롱’은 꿈을 담은 채롱이라는 뜻으로 만든 이름일 텐데, 요즘은 채롱이라는 말을 쓰는 이가 거의 없어 어떤 물건을 말하는지 모를 이들이 많겠다. 국어사전에서는 채롱을 ‘껍질을 벗긴 싸릿개비나 버들가지 따위의 오리를 결어서 함(函) 모양으로 만든 채그릇’ 정도로 풀이하고 있다. 채롱의 용도는 무척 다양해서 각종 물건이나 음식을 담아 놓기도 하지만 바닷가에서는 물고기나 해산물을 담는 그릇으로도 사용했다. 가리 비 같은 조개류를 양식할 때 쓰는 채롱이라는 것도 있다. 이때는 한자로 ‘採籠’이라 표기하는데, 철사로 망을 엮은 다음 그물을 씌우거나 플라스틱에 구멍을 내서 만든 것으로 그 안에 어린 조개를 넣어 기른다. 하지만 이런 뜻을 지닌 동음이의어 채롱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채롱과 비슷한 것이 몇 개 있다. 싸리가 많이 나는 산간 지역에서는 항아리가 귀한 데다 가마니를 짤 짚이 없어 대신 싸리로 엮어 만든 커다란 통에 곡식 등을 담아서 보관하는데, 이를 채독이라 한다. 채를 엮어 만든 독이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다. 그런가 하면 치룽이라는 것도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치룽을 ‘싸리로 가로로 퍼지게 둥긋이 결어 만든 그릇. 채롱과 비슷하나 뚜껑이 없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채반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높이가 있어 구별이 되며, 광주리와 비슷한 물건이다. 치룽에 물건을 넣어서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파는 사람을 치룽장수라고 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은 어렵지 않게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 낱말들은 정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채롱부처(채籠부처): 껍질을 벗긴 싸릿개비나 버들가지 따위의 오리를 결어서 만든 부처의 상.≒농불.
채롱부채(채籠부채): 껍질을 벗긴 싸릿개비나 버들가지 따위의 오리를 결어서 만든 부채.
채롱부처의 유의어로 제시된 농불은 한자로 ‘籠佛’이라 적는다. 한자어까지 있는 걸로 보아 그런 물건이 존재했던 건 분명한 듯하다. 싸리말이라는 게 있다. 싸리를 엮어서 말처럼 만든 것으로, 천연두 귀신을 태워서 쫓아내는 의식을 벌일 때 사용했다고 한다. 싸리말은 어렵지 않게 용례를 찾을 수 있으며, 싸리부처도 싸리말과 비슷한 용도 즉 주술적인 의례를 행할 때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찾아봐도 채롱부처와 농불이라는 용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사용된 예를 찾기 어려운 낱말이다.
채롱부처보다 더 이상한 채롱부채는 어디서도 용례를 찾지 못했다. 싸릿개비나 버들가지로 엮은 부채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물건이 존재했을 것 같지 않다. 설령 그렇게 만들었다 쳐도 겉을 종이나 천으로 싸야 하는 게 아닐까? 궁금증을 풀기 어렵던 차에 농선지(籠扇紙)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부채를 만드는 종이.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에서 난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다른 자료에서 찾아보니 닥나무 껍질을 이용해서 만든 두꺼운 종이로, 주로 부채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농선지로 만든 부채를 누군가 농(籠)에서 채롱(-籠)을 끌어온 다음 ‘채롱부채’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채롱과는 상관이 없는 이상한 용어라 널리 유통되지 않고 사라졌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