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백 명창 혼 생가지 도만리로 모셔온다”
“이동백 명창 혼 생가지 도만리로 모셔온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4.07.17 10:45
  • 호수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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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천면주민자치회, ‘초혼묘 조성사업’ 추진
▲지난 7일 이동백 명창 득음터를 찾은 TJB 다큐멘터리 제작팀
▲지난 7일 이동백 명창 득음터를 찾은 TJB 다큐멘터리 제작팀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각 지자체는 그 고장 특유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조그마한 근거나 기록만 있어도 문화유산을 만들고 정비를 부지런히 하고 있으며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삼고 있다. 이는 단절되었던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려 사회를 윤택하게 살찌우고 나아가 후대에 좋은 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소중한 일이다.

유네스코에 문화유산에 등재된 판소리, 서천은 판소리 근대5명창 가운데 이동백과 김창룡을 배출한 지역이다.

이동백 명창은 종천 도만리에서 태어나 장항 성주리의 김정근 문하에서 김창룡과 함께 중고제 판소리를 익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되어 일세를 풍미했던 대명창이다. 또한 엄혹한 일제 강점기에 조선성악연구회를 주도하며 전통문화유산을 지키고 맥을 잇는 데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동백 명창은 1949510() 경기도 평택에서 별세했다. 그가 살던 곳은 평택시 칠원동 새말이었으며 묘소가 있던 곳은 원곡면 내가천리 두리봉 기슭이었다는 고증이 있다. 불행하게도 뚜렷한 후손이 없어 묘소의 토지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가 소문없이 파묘되어 그의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나 자란 종천면 도만리에는 그의 생가터와 득음굴인 용구, 생가터에서 득음굴에 이르는 그가 오르내리던 오솔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에 타지에서 떠돌고 있는 이동백 명창의 고혼을 모셔오기 위해 종천면주민자치회가 나섰다. ‘이동백 명창 초혼묘 조성추진 실무 업무를 맡고 있는 백세기(종천면 산천리)씨는 만시지탄이지만 옛 묘소 현장을 찾아가 초혼의식을 통해 그의 영혼을 다시금 종천면 고향으로 모셔오고자 한다주민참여예산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타지역에서 이미 이동백 명창을 기리고 찾는 작업들이 활발하다. 고향인 서천군에서 이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천에서 이동백 초혼묘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타지역에서는 이미 이동백 명창을 끌어들이는 사업을 벌여왔다. 공주시에서는 이동백 명창이 잠시 거주했다는 공주시 옥룡동 대추골에 행정도로명으로 이동백소릿길을 지정 시행하고 있으며, 관련하여 시 차원의 교육, 강습, 공연 등 지원을 연중으로 지속하고 있다.

평택시 또한 10여년 전부터 이동백 명창이 안장된 연고를 연관지어 이동백 명창 추모행사를 시민단체들과 함께 해오고 있다.

충북 진천은 이동백 명창의 백부가 살았던 곳으로 이동백 명창도 태어나자마자 백부 슬하에서 자랐다고 하는 기록에 의거하여 진천군과의 연고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홍성군에서는 지난해 군비를 들여 결성 최선달과 중고제 활성화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민간영역에서는 서천 출신 김창룡 명창이 제적등본기록상 결성 용호리로 되어 있다는 근거로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동백 명창의 유골은 사라졌지만 이제라도 그의 고향 사람들이 업적을 기려 초혼의식을 통해 이동백 명창을 정중히 모셔오고 생가터, 득음굴, 산책로, 둘레길과 함께 문화 예술 휴양 관광이 꽃피는 명소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민과 관의 협력이 절실하다.

▲도만리 이동백소릿길
▲도만리 이동백소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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