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경전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경전經傳이라 함은 성경현전聖經賢傳의 준말로 경과 전을 말함인데 소설 삼국지에서 사마염 시대의 사람으로 중서시랑中書侍郎을 거쳐 중서령中書令으로 승차했고 나중에 태상太常의 지위에 까지 오른 장화張華는 자신의 불후의 명저 ‘박물지博物志’에서 성경현전聖經賢傳을 이렇게 풀이한 바 있다. “성인이 지은 것을 ‘경’이라 하고<성나제작왈경聖人制作曰經> 현자가 그것을 풀이한 것을 ‘전’이라 한다<현인저술왈전賢人著述曰傳>”
장화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의 제자로 어려서부터 잡가로부터 정사의 책에 이르기까지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하며 스승 완적이 말하다가 글이 막히면 장화에게 물어보아 그 말의 출처를 후학들에게 말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경전고문經傳古文에 밝은 인물이다. 이런 장화를 두고 스승 완적은 늘 자랑하기를 “나의 제자 장화는 지재유경志在有逕이야.” “나의 제자 장화는 지재유경志在有逕이야.” 라며 자랑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지재유경志在有逕을 풀어쓰면 뜻 있는 곳에 길 있다는 말이다. 곧 어려서는 뜻을 세워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 학자들의 계보를 열거한다면 춘추학의 거두인 하휴何休가 있고, 시경詩經해석의 권위자인 정현鄭玄이 있었고, 그의 문하에서 마융馬融과 중랑장 노식盧植이 나왔고, 노식 문하에서 한소열제 유비劉備현덕玄德이 나왔고, 마융의 계열에서 하안何晏<소설 삼국지 초두에 십상시에게 죽은 대장군 하진의 친손자>이 나왔고, 그 문하에서 죽림칠현이 나왔고 죽림칠현 혜강 이후 93년 후 자연을 노래한 시인 고개지가 나왔고, 그로부터 20년 후 혜강으로부터 113년 후에 그 문하에서 동진의 귀거래사의 시인 도연명이 나왔다.
이렇게 볼 때 시대에 상관없이 공부라는 것은 계속해서 누군가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면서 공부가 공부를 잇는 공부의 연속성을 지켜왔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전을 후학들이 어려서부터 공부하며 읽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성인의 말씀인 경의 풀이 과정을 살펴보면 성聖⤑경經⤑전傳⤑주注⤑세주細注⤑소疏⤑비지備旨⤑집주언해集註諺解⤑현토완역懸吐完譯 순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를 좀더 쉽게 풀어쓴다면 주注는 논에 물을 댄다는 의미의 지식 쌓기 과정이며, 소疏는 ‘머리에 빗질하다’ 정도의 정돈하기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바 경전의 해석에는 몇 개의 원칙이 있다.
첫째 전으로써 경을 해석한다.<이전해경以傳解經> 둘째 전은 경을 이길 수 없다.<전불위경傳不違經> 셋째 전은 경을 깰 수 없다.<전불파경傳不破經> 넷째 소는 주를 깰 수 없다.<소불파주疏不破注> 다섯째 경에는 불가침 원칙이 있다.<경불가침經不可侵> 여섯째 소와 세주는 주를 해석하는 것이다.<소세해주疏細解注>
이쯤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注와 세주細注이다. 특히 대학자 주자의 입장에서 볼 때 주자는 세상의 모든 주注를 모아다가 주註를 달아 집주集註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시경 서경에 대해서는 집주를 낸 바가 없다. 이는 아마도 시간이 부족해서였으리라고 우愚는 생각한다. 그가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시경에 주註를 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으나 시경은 주註를 내기에 자료가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결국 주註를 내기를 그치고 전傳을 모아다가 집전集傳을 내기에 이른다. 그래서 나온 게 시경집전과 서경집전이다. 물론 서경집전은 오롯이 완성을 못 보시고 그의 사위이자 제자인 채침蔡沉에 의해서 완성된다.
한 번은 어려서의 채침이 이렇게 물었다 전한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많이 하는 겁니까. 스승 주자는 말한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매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때에 맞게 물을 대주고 김을 매주는 거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뜨든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말든 상관없이 순간과 찰라도 잃지 않고 논과 밭을 오가며 땅을 돌보고 곡식과 채소를 돌보는 것처럼 하면 되니라. 그러면 가을에 땀 흘린 만큼의 수확이 있느니라. 농부가 훌륭한 것은 비록 저들은 경전의 글은 다 읽지 못했다 해도 노력의 대가가 아니면 사양하는 도를 지녔기 때문이니라.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