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시황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로 법가를 등용한다. 승상 이사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 인물이다. 결국에는 그도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서 아들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허리가 잘려 죽는다,
법가들은 누군가의 뒤를 캐는 자들이다.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남이 알아서는 곤란할 것 같은 누군가의 은밀한 부분까지도 틀어쥘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법가들은 과거에 회의적이다. 이미 흘러간 물에는 손을 씻을 수가 없다는 게 저들의 변이다.
법이 사람을 통제하다 보니 여기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장사상으로 대변되는, 애쓰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실현 불가능하다. 다만 피세避世하여 ‘나는 자연인이다’ 정도의 삶은 가능할 수 있으나 거기까지다.
그런데 법과 피세 사이 중간쯤에 유가의 사상이 존재한다. 곧 공자의 논어가 그것이다. 현실을 고민하면서도 옛날 성군이 했던 왕도정치를 하자는 게 그것이다. 왕도정치를 하려면 임금이라도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그런 임금을 가르치는 자는 누구인가. 이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하면 몸을 왕이나 공과 대부에게도 굽히지 않으며<신불굴어왕공身不屈於王公> 부모님께 받은 이름을 평생 훼손시키지 않을 수 있다.<명불모어종시名不耗於終始> 이렇게 공부하는 것을 책벌레라는 뜻의 ‘서음書淫’이라 한다. 다만 여기서도 지켜야 할 정도가 있으니 황보밀에 따르면 사람이 지극히 아까운 것은 목숨이며<인지소지석자人之所至惜者 명야命也>, 도에 있어서 반드시 온전히 해야 할 것은 육체이며<도지소필전자道之所必全者 형야形也>, 정신과 육체가 범해서 안 될 것은 병이니라.<성형소불가범자性形所不可犯者 질병야疾病也. 황보밀 고사전 20쪽 김장환역>
쉽게 말해서 목숨을 보전하고 몸도 온전히 보전하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건강한 삶을 말한다. 이는 공부하는 사람이 해야 할 첫 번째 수기守己의 일이다. 이렇게 공부한 사람을 일러 신하이지만 함부로 부를 없는 신하라 한다. 궁중 문서관장인 상서尙書를 지낸 왕패王霸는 이렇게 말한다. “천자라도 신하로 삼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천자유소불신天子有所不臣> 제후라도 친구로 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제후유소불우諸侯有所不友>”
이 모두가 공부를 많이 해서 얻어지는 영예인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등과하여 벼슬을 살기 위함이 아니다.<위인지학爲人之學> 그렇다고 부를 축적하는 방편으로 삼기 위해서도 아니다. 은일隱逸의 삶을 사는 일민逸民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민의 삶을 살던 자들도 벼슬에 오른 경우가 있었는데 논어 요왈편에서 주 무왕의 행적을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으로 “공자님 말씀에<공자칭孔子稱> 주나라 무왕은 일민을 들어 쓰시니<학일민學逸民> 천하의 민심이<천하지민天下之民> 주나라로 돌아갔다.<귀심언歸心焉>”
요즘에는 공부라는 것이 직장을 구하기 위한 도구요. 돈을 벌기 위한 통로요, 먹고 살기 위한 매개체 정도에 그치지만 본디 공부라는 것은 나를 지켜 남을 편하게 해주는 데까지 이름이다.<수기안인守己安人> 이러한 공부는 여느 책보다는 경전의 말씀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경전의 기본이라 하면 사서 육경이 있는데 사서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이 그것이며 육경은 시경 서경 예경 악경 역경 춘추경이 그것이다. 경전은 공부하는 시기가 따로 있지 안다. 어려서는 어리니까 공부하는 거고,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공부하는 거고, 노년에 이르면 노년에 이르렀으니까 공부하는 거다. 그래서 경전공부를 일러 평생 공부라 한다.
평생을 경전공부로 일생을 마친 인물을 들라면 하늘의 별처럼 많겠으나 그중에 특히도 22세에 과거시험에 1등으로 입격한 소동파가 있다. 그는 판관 포청천 후임으로 개봉부 판관이 된 구양수의 제자인 바 구양수 또한 공부라 하면 나름의 서사를 갖는다. 어려서 무지막지하게 공부한 인물이다. 낮이면 눈 떠서 읽고, 밤에 눈감으면 낮에 읽은 것들을 생각해내어 외우고 이렇게 하여 낮과 밤 모두 공부만 했다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