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세계지질과학총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되었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지질학자의 총회는 코로나19 창궐로 8년 만에 열렸는데, 일찌감치 세계적으로 주목한 사항이 있었다. 지질과학의 올림픽이라 일컫는 이번 학회에 121개국 7천 명의 과학자가 운집해 규모가 대단했다. 하지만 세계가 주목한 핵심은 지구 현 지층의 이름이었다. 지층의 파괴와 화석연료 과소비가 가져온 기후와 생태계 위기는 이제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류의 분별없는 행위로 안정을 잃었으므로 지층 이름을 홀로세(Holocene)에서 인류세(Anthropocene)로 바꿀 것으로 예견했고, 지질학계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총회는 지층 이름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지층 이름을 바꾸려면 지질과학회 내 층서위원회 위원의 60%의 동의가 필요한데, 몇 가지 이유로 실무위원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층연대표의 새로운 이름을 이번에 공식 채택하지 않았지만, 인류세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층서위원회는 주장한다. 인류세 지층의 시작을 1950년으로 단정할 만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논란을 피하지 못했지만,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닌 까닭이다. 분명한 증거를 까다롭게 요구한 지질과학회는 승인을 보류했지만, 연구가 축적되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알려진 지층 이름을 확정할 때 채택했던 증거들과 질적 양적으로 비교할 때, 지층에서 확인된 증거는 명확했기 때문이다.
실무위원회에서 하필 1950년을 콕 짚어 주장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억년 단위 지층에서 100년이 되지 않는 지층은 지나치게 얇다. 화석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류가 저질러 놓은 교란 흔적은 두드러진다. 홀로세는 정확하게 11700년 전으로 정했다. 직전까지 이어진 빙하기와 간빙기가 사라지고 온난해진 증거가 확실하게 남았기 때문이었다. 온난해진 덕분에 인류는 농사를 시작했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인류는 이후 지층을 함부로 변형시켰으며 생태계를 멋대로 교란했다. 그뿐인가?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사라진 물질을 지층에 포화시켰다. 순환을 거부하는 시멘트, 방사성물질, 유기화합물질, 플라스틱, 초미세먼지, 그리고 유전자조작 생물들이다.
4년 또는 8년 후 지질과학총회에서 새로운 지층이 승인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학자들은 이름이 인류세가 아닐 수 있다고 본다. 평범한 인류는 지층을 교란할 리 없지 않은가.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자본이 문제를 거듭 일으켰으므로 자본세(Capitalocene)로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는 상황이다. 한데 공식 지층 이름은 지질학자가 결정한다. 새로운 지층 이름을 인류세로 정해야 한다고 믿는 실무위원회는 지질학계 이외에서 인류세에 동의하는 현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현재까지 5차례 대멸종을 기록하는 지층에 가장 늦게 등장한 인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지른 행위가 현재처럼 계속되는 한, 현 지층에 인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으므로.
인류세를 강조하는 사회학자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기 거부하는 인류”가 인류세를 자초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하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현상을 반성하면서 삶의 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 인류는 지층을 무너뜨리면서 온실가스를 내뿜는 기술에서 대안을 찾으려 든다. 거대한 제방으로 막아 바닷물의 침입을 막으려는 태도만이 아니다. 안정을 잃은 지층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핵으로 전기를 생산한다고 대기에 축적된 온실가스가 줄어들 리 없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상상을 초월하고 미래세대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기후대응”을 내세우면서 14개의 댐을 세우겠다고 한다. 생태계 순환을 틀어막겠다는 선언이다.
만유인력은 인류가 발명하지 않았다. 인류는 그 손바닥 안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듯 열역학도 마찬가지다. 기술로 자연현상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는 진리인데, 인류세를 자초한 인류는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고 외치니, 미래세대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핵심을 놓친다. 어떤 세력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외면하는 걸까? 벡스코에 운집하는 지질과학회 과학자 규모에 감탄하면서 울산 앞바다의 석유탐사를 거론할 따름인데, 미래세대는 어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