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와 약속한 게 있다. 계단은 걸어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내 집은 아파트 3층이다. 절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걸어서 올라간다. 짐이 있을 때만 위험하기 때문에 예외이다. 높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계단 오르기에는 딱 알맞은 층수이다. 지하철을 탈 때도 마찬가지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절대 타지 않는다. 내려 갈 때만 탄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이다.
우리집 계단을 오를 때 신문이나 휴대폰 등을 보곤 한다. 헛디딜 때마다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 신문을 읽으며 계단을 올랐다. 그만 헛디디고 말았다. 앞정강이가 꺾여 뽀족한 철모서리에 눌렸다. 체중이 얹혀졌다. 뼈는 다치지 않았으나 눌린 데가 패여 꽤 아팠다. 아차 싶었던 게 일이 벌어진 것이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딴 짓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집사람이 약을 발라주면서 애 나무라듯 한다. 들어야 싸다.
“맞아.”
굴러 떨어지면 어쩔 뻔했을 것인가. 뼈가 약한 어르신들은 부러지기 일쑤이다. 여간해서 뼈가 붙지도 않는다. 그러다 먼 길을 떠난다. 모골이 송연하다.
다리 운동을 자주 하던 터라 계단 오르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감이 문제였다. 젊은이들이야‘과감하게’이 말이 통할지 모르나 어른들에게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들어서도 안 될 말이다. 어른들께는 언제나‘조심조심’불조심이다. 눈길도 잔걸음, 빗길도 잔걸음이다. 한 군데만 집중해야 그래야 안전하다.
어르신들에겐 첫째도 건강이요, 둘째도 건강이다. 늙어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건강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만심이 무릎을 다치게 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흔한 말 같지만 흔한 말이 아닌 살면서 언제나 교훈으로 삼아야하는 말이다. 과유불급, 새옹지마, 지란지교 그 어떤 세상사도 다 일체유심조 안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속에 곤히 자고 있었던 말이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깼다. 내게로 안긴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게는 커다란 깨달음이었다. 깨달음이 어디 원효 대사의 대오각성만인 것인가. 눈물겨운 것들이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사방에 널려있다.
나이 들어 오르는 우리집 3층 계단, 내겐 108계단이나 다름이 없다. 오늘도 3층 계단을 오른다. 앞으로는 수행하듯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4.7.23. 여여재, 석야 신웅순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