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어부를 찾아서
금강의 어부를 찾아서
  • 이후근 기자
  • 승인 2004.09.03 00:00
  • 호수 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구둑 건설이 바꾸어 놓은 것들
금강(錦江)은 공주의 옛 지명인 ‘곰나리’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전북 장수읍 수분리 기슭 뜬봉샘에서 발원하는 금강은 곳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많다. 발원지 부근에서는 적등강, 부리면 일대에서 적벽강, 대청댐이 있는 신탄진에서 시알강(新灘江), 강경에서 강경강, 하구에서는 진강으로 불리어진다고는 하나 모두 우리 고장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이름인 것 같다.금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서천이다. 금강의 범람은 넓은 충적평야를 만들어주었고 수운이 열리게 했으며 많은 산물을 가져다주었다.선사시대 이래로 바다를 면한 강은 인류에게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옛 사람들에게는 먹고 버린 조개 등이 쌓여 만들어진 쓰레기장 일뿐인 조개무지를 발견하고 열광하는 현대의 고고·역사학자들을 보며 역사의 작은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물론 우리지역도 장항읍 장암동, 화양면 안보리 등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삶의 기록으로 남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때론 강의 흐름이 바뀌어 그것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바뀔지라도 근본적인 강과 사람들의 연관관계는 변할 수 없다.결코 끊이지 않을 것 같은 금강물의 흐름과 같이 또 그것에 몸을 맡기어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찾고자 ‘금강의 어부’를 가장 근접한 소재로 여겨 취재에 나섰다. 오랜 세월 금강과 함께 살아와 강에 얽힌 얘기 한 대목쯤은 얻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처음 듣기로는 화양면 완포리 어디에서인가 지금도 고기잡이 하는 노인분이 계시다는 풍문을 듣고 찾았다. 아뿔싸 노인은 고기잡이를 그만두신지 오래란다. 대신 할머니로부터 “나이도 많고, 질루 고기가 안 잡혀서 딴데루 일 댕겨”라는 대답만을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혹시 “하구둑 완공으로 생태계가 변해 고기가 안 잡힐까”라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잠시의 황망한 분위기를 정리하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배들이 묶여 있는 곳을 찾았다. 강 중간 보드세일링을 하는 동호인들의 한가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한 쪽에 서너 척의 고깃배들이 묶여 있었고 다행히 조업 준비를 하고 있는 한 척의 배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부가 너무 젊다. 그러나 오래 고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배 좀 얻어 타고 사진 좀 찍을 수 있습니까?” 대답이 없다.“잠깐만요” 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하여간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다.어부는 예상대로 젊은 김수철(38·장항 신창동)씨이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강 한가운데로 배를 몰아갔다.“얼마 만에 나오셨어요?”“오랜 만에 나왔습니다.”같이 작업하던 배들도 고기가 안 잡혀 쉬거나 고기 잡기를 포기한 배들이 많단다. 얼마 전만해도 붕어며 민물고기를 잡는 노인분이 몇 분 계셨었단다. 본인 또한 민물장어 잡는 일을 하고 있는데 영 시원치 안다고 하며 오늘은 미끼로 쓸 민물새우를 잡을 통발을 살피러 나왔음을 기자에게 전했다.


통발을 살피니 잡힌 것이 거의 없다.
“어떻게 하지요 이렇게 새우가 안 잡혀서”
“한해 많이 잡히면 다음에는 안 잡히고 그래요”
“안 잡힐 때를 대비해서 언제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역시 그도 어부였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라고 했던가.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산품처럼 마냥 생산할 수 없는 것이 고기잡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자연의 이치와 원리를 너무나 잘 알고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려는 사람들 그래서 농부와 어부는 서로 닮아 있는 지도 모른다.

열심히 오직 자신의 땀으로 자신의 경작지인 논과 밭, 바다를 가꾸어가는 그들의 삶 자체가 자연을 너무도 많이 닮아 있다.

“외지로 나갈 생각은 별로 해본 적 없습니다. 나간 친구들도 별 수 없는 것 같고 그냥 이 자리를 지키고자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금강 하구의 풍요를 보고 자랐고 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김수철 씨에게도 현실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다가 왔다.

스스로 어민회 활동 등을 통해 복잡한 수산업법, 대형선박이나 어장 위주의 수산업지원 등 현실을 뛰어넘기 위한 고민과 노력들을 했었단다. 또 폐선박을 활용한 인공어초 사업 등에 관해 구상을 세우고 관계요로에 자신의 뜻을 전달했지만 들려오는 건, 수용불가라는 대답뿐이었다며 이제는 적당히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이일을 계속하고 있노라고 전했다.

“하구둑 공사 전에는 어떤 고기들이 많이 잡혔나요?”
“아 그때는 많았지요, 숭어, 민물게, 민물장어, 우어 등 많이들 잡았었지요. 근데 지금은 없어요 그나마 잡히던 것들도 다 없어진 상태고 무엇보다도 바다와 민물 양쪽을 오가는 회유성 어종들이 대부분 멸종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토사로 물길이 막혀 모터보트 아니면 다닐 엄두도 못 낸단다. 하구둑 공사 완전히 실패한 개발입니다.”

최근 ‘한강하구연대’라는 시민단체는 “4대강 중 금강, 낙동강, 영산강이 하구둑 공사로 인해하구 생태계의 기능을 상실 한 채 유일하게 하구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한강 하구가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고 있다”며 “생태계보존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 했다.

1990년 완공된 하구둑은 철새요람이 되어 각광받고 있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또 다른 생태계의 변화와 함께 그것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보상이요, 없어지면 그만입니다. 보상받으면 뭐합니까? 그 돈 가지고 어디 가서 뭘 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금강에서 고기 잡는 풍경이 사라지고 장항 선창의 흥청거림이 먼 옛말로 들리는 지금,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금강 어부들과 서천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