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초입에서 만난
작목반원 신명식씨는 우라리 포도재배 유래는 20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해 주었다. 같은 마을에 살던 고(故) 김창희씨, 백남준씨 등이
포도를 재배해 제법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너도 나도 시작한 것이 현재는 군내 최고 포도작목반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작목반원들
사이의 단합도 잘돼 작목반 기금으로 600만원을 마을에 기부해 주차장을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 사이의 화합과 단결도
어느 마을에 뒤지지 않아 마을 진입로를 포장하는 일에도 주민 모두 십시일반 훌륭한 진입로를 갖추었다. 닦아 놓은 진입로는 덜컹거리지 않아 포도
운송에도 안성맞춤일 것 같고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하지만 잘 닦여진 길 때문에 외지인들이 무분별하게 마을 경관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묘지를 조성하는 사례가 늘었던 것. 이를 마음 아파하던 마을 주민들은 이번에도 뜻을 모아 “무단묘지 설치 엄금” 이라는 안내문을 마을 어귀에
세우고는 불법·무단 묘지 조성 감시에 나서게 됐다.
이 같은 우라리의 화합과 단결의 분위기는 자신들 어렸을 적 마을 아이들이 잘못된
언행을 했을 때 뉘집 자식 가릴 것 없이 매를 들고 훈계했던 마을 어른들의 덕분이라고 신씨는 전했다. 줄줄이 이어진 마을 자랑, 작목반
자랑을 뒤로 한 채 작목반장 신형순(67)씨의 포도밭으로 향했다. 역시 가족들과 함께 비가 오는 중에도 포도 수확과 출하 준비에
한창이었다.
“올해 포도 작황은 좀 어떻습니까?” “좀 좋아요, 올 여름 날도 좋았지만, 포도라는 작물이 원래 사람손이 많이
가면 갈수록 소출은 좋아지는 법입니다. 왜 자식도 그렇게들 키우잖아요?” 한해 소출의 많고 적음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몸으로, 땀으로
가꾸어낼 뿐이라는 땅과 농부의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하는 말이었다.
“올해까지는 괜찮은데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신형순 작목반장이 인터뷰 말미에 푸념 담아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한·칠레 간 자유무역협정(FTA)의 완전 타결에 따른 포도 수입을 염두에 둔
말이란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3년간의 협상 끝에 타결된 협정 결과에 따른 우려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포도의
주요 산지인 옥천 등지에서는 전체 포도재배 농가의 41.7%에 이르는 많은 농가들이 재배를 포기하고 보상비를 타기 위해 과원폐업신청을 냈다. 또
남은 농가들은 경쟁력 있는 재배방법이나 상품을 만들기 위해 시설재재를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다한다는 소식들도 들려오고
있다.
우라리 포도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아님을 확인 했다. 수입개방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헤쳐가기 위한 우라리 작목반원들의
지혜와 수고가 다시 한 번 위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