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은 이미 협상대상도 아니다
쌀은 이미 협상대상도 아니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0.20 00:00
  • 호수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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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쌀만은 지키겠다” 주장은 국민기만

   

▲ 허정균
프리렌서

가트(GATT)나 WTO 같은 다자간 협정에서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협상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특정국가와 1:1로 협정을 맺는 FTA이다.

2006년 새해 벽두에 국민들은 “미국과 FTA를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도 미국 의회의 일정에 맞추어 내년 3월까지 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크린쿼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약값의 재조정,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 등 굵직한 협상 카드를 협상도 하기 전에 4대 선결조건이라며 미국에 공짜로 ‘헌납’했기 때문이었다.

4대 선결조건에 관해서 지난 6월 미국 FTA 협상단 대표들에게 항의를 했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4대 선결조건은 당신들의 정부가 해결해준 것이다. 당신들의 정부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를 미 협상단의 부대표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한다.

다자간협상 틀 안에서 이미 타결
우리 농민들의 마지막 생명줄이자 주곡인 쌀은 어찌 되는가. 현재 한국은 쌀을 제외하고는 모든 농산물을 WTO 회원국에게 개방(관세화)하고 있다.

쌀 시장의 경우 우리나라는 WTO 다자간 협정의 틀 안에서 이미 관세화 대신 최소시장접근(MMA) 정책을 유지할 것을 결정하고, 미국과 협상을 벌여 2004년 12월 타협안을 도출한 후 2005년에 국회의 비준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향후 10년간 쌀 수입을 두 배로 늘리고 해마다 최소한 5만톤의 미국 쌀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WTO 회원국에게 여타의 농산물처럼 쌀을 개방하려면 2014년까지 8% 의무 수입쿼터제를 규정한 WTO 한국 쌀 양허표 대신 새로 쌀 관세율을 정하는 협상을 WTO 회원국들과 타결해야 한다. 한국과 WTO 회원국들 사이의 협상이 따로 열리지 않는 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에 쌀을 개방하라고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가트위반 쌀시장 개방 요구못해
그렇다면 미국은 미국에게만 쌀을 개방하라고 한국에 요구할 수 있는가. 그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트 24조는 어떤 특정한 FTA 때문에 역외국(예를 들어 한미 FTA의 경우 중국)과의 교역이 더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한국이 미국산 쌀만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방한다면 중국이 2004년 쌀 협상, 곧 현행 쌀 양허표에서 법적 기득권으로 확보한 연간 80만 석의 쿼터제 물량, 그리고 이 가운데 30% 이상을 밥쌀용으로 시판시킬 수 있는 권리는 침해받을 것이며 이는 중국의 쌀 교역을 제한하는 결과로 작용한다.

이럴 경우 한미 FTA는 앞에서 본 가트 24조를 위반한 불법 FTA가 된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자국에게만 쌀을 개방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한국은 GATT 4조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보장한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축소하여 이번 FTA 협상 전에 미국에 ‘진상’하였다)

그렇다고 쿼터 운용에 있어서 미국만을 우대하기도 어렵다. 현행 WTO 쌀 양허표는 특정 국가 쿼터제 물량과 별도로 2014년까지 모두 776만 석의 쌀 쿼터를 두었는데, 자유경쟁입찰 방식으로 쿼터를 처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WTO 한국 쌀 양허표 3.2조). 만일 이 쿼터를 운용하면서 미국을 우대한다면 이는 다른 회원국의 자유경쟁 권리를 직접 제한하는 것이 되어 가트 24조 위반이 된다.

또한 GATT 13조는 쿼터제도와 같은 수입량 제한조치를 할 경우 원산지에 관계없이 다른 회원국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쿼터도 각 수출국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할 만한 몫에 근접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다.

관세화든 물량이든 대상 안돼
이처럼 쌀문제에 관한 미국과의 협정은 FTA 역외국에 대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여 가트가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위반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섣불리 다룰 사안이 아닌 것이다. 미국에 ‘쌀 생산자협회’(USA Rice Federation)라는 단체가 있다.

이 협회는 지난 3월 14일 워싱턴에서 미국 정부가 개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에서 “한국에 쌀 개방 이행 기간을 10년 넘게 주어서는 안 된다(no longer than 10 years)”고 요구했다. 이 협회가 신속한 쌀 개방을 요구하지 못하고 10년이라는 이행 기간을 주문을 한 데에는 이 같은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협회는 칼로스쌀의 한국 국내 도정 허용과 같은 다른 현안을 챙기려 할 것으로 예측된다.

김종훈 한미FTA 한국측 수석대표도 지난 7월 13일 미국의 쌀시장 개방 요구와 관련해 “쌀에 관한한 개방 제외가 원칙”이라며 “이번 FTA 협상에서는 관세화든 물량이든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달 21일 “쌀을 제외할 경우 경쟁력 없는 품목의 비중은 2.0%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쌀시장 개방을 반드시 저지하고 이 2.0%에 대해 충분한 지원대책을 세우면 한미FTA로 인한 농업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홍보수석의 이같은 발언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쌀은 이미 협상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한미 FTA에서 쌀을 지킨다”는 것은 전략도 아니다. 한국의 관리들이 ‘쌀은 지켰다’고 내세운다면 한미 FTA가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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