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퇴계 이황 선생님의 공부와 벼슬 물러나심
■ 송우영의 고전산책 / 퇴계 이황 선생님의 공부와 벼슬 물러나심
  •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 승인 2024.06.28 10:18
  • 호수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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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송우영

예조 정랑 김한철金漢哲공은 학봉 김성일의 종고조부從高祖父되시는 바 퇴계의 부친 이식李埴공의 장인이시다. 어느 날 그가 유명을 달리하시니 부인 남씨는 사위 이식공이 공부를 좋아함을 알고는 평소 남편이 소장한 거질의 책들을 물려줬는데 이는 훗날 이식공의 말째아들 퇴계께서 고경古經과 백가百家의 글에 통달하는 지경에 이르는 대학자가 되는 단초가 된다.

공께서 평소 아들들에게 했다는 말 중 하나를 풀어쓰면 이렇다.

나는 밥 먹을 때도 글과 함께 먹으며, 잠을 잘 때도 글과 함께 자며, 앉아서도 글과 함께 앉으며, 걸을 때도 글과 함께 걷나니, 글이란 한 시 반 각도 마음에서 떠나서는 아니되니라. 그러하거늘 유유하고 멍하니 세월만 보내고 있다면 이래서야 어찌 다음날 성취가 있기를 바라겠느냐.”

그런데 이토록 훌륭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단 한 글자도 받지 못한 인물이 그의 막내아들 퇴계인 것이다. 이유는 생전의 이식공은 1501년 연산군 7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듬해 39<40>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곧 퇴계 생후 7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남겨진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과 현달의 몫은 오롯이 부인 춘천박씨녀의 노력 여하에 달리게 됐다.

춘추 경의 해설서 중에 한 권인 춘추곡량전 소공19년조 초두는 이렇게 기록한다. “자식을 이미 낳았는데<자기생子旣生> 8세 이전에 물과 불을 만나 화를 당한다면<부면호수화不免乎水火> 이는 엄마의 잘못이며<모지죄야母之罪也>, 자녀가 10세가 되었음에도<기관성동羈貫成童> 스승을 만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부취사전不就師傳> 이는 아버지의 잘못이다.<부지죄야父之罪也>”

쉽게 말해서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아내가 책임져야 할 몫과 남편이 책임져야 할 몫이 구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남편이 돌아가신 지금에서는 이 모든 것이 아내의 몫이다. 이에 홀어머니 춘천박씨녀는 17남의 자녀들을 단 한 명도 흐트러짐 없이 올바르게 길러낸 올곧은 모이시다. 문제는 퇴계 이황 선생이 어려서는 잔병이 끊이지 않는 병을 달고 사는 연약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가세는 기울어 모친 춘천박씨녀는 남겨진 자녀와 먹고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하는데 선생은 이러한 모친 춘천박씨녀의 헌신에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공부를 잘하는 길밖에 없다 여겨 공부를 무진장 많이 했다 전한다.

이때의 일을 훗날 남명 조식에게 편지로 밝히기를 내가 아픈 몸임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은 벼슬을 하기 위함이었으며 벼슬을 해야 했던 까닭은 집은 가난하고 어머니는 연로<가빈친로家貧親老>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환경과 처지가 충분히 공부하지 않아도 될 핑계거리가 있음에도 퇴계 이황선생의 어린시절은 그리하지 아니하시고 뜻을 굳게 세우셔서 오로지 공부만 하셨다. 그렇다고 공께서 어려서부터 천재적 기질이 있으신 바는 아니었으리라. 당시 양반가의 학습법으로 보아 열두 살에 논어를 읽었을 정도면 늦어도 한참 늦으나 조선 최고의 대학자 반열에 오른 데에는 멈추지 않는 공부 노력이 있었다. 이제 그간의 공부로 인해 가난도 면했고 벼슬도 얻었고 또 명예도 얻은 바 되었으니 이쯤에서 물러나 그간 못해뒀던 공부를 더하고자 함이 강했다.

하여 42세 되던 해인 154310월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나 스스로 물러난다. 물러난 이유는 주자대전이라는 책을 읽고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훗날 후학 우암 송시열 선생도 주자대전차의를 쓰면서 퇴계 선생의 글을 참고했을 정도라 하니 그 학문의 깊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임에 분명했다.

퇴계 이황 선생의 공부관은 간단하다. ‘존천리存天理 멸인욕滅人慾이 그것이다. 풀어쓰면 하늘의 이치를 따르면서 사람의 욕심을 없애고자 하심이다. 이를 한 글자로 정리 압축하신 게 이다. 평생을 경한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으신 분이 퇴계 이황 선생님이시다. 성호 이익은 이자수어李子粹語 6장 거가居家편에서 공의 평소 생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옷과 의관이 단정하게 입지 않으시거나 다리를 꼬고 앉으시거나 기대시거나 누우시거나 엎드려 계심을 본 적이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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