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 (98)풀매와 물맷돌
■ 박일환의 낱말여행 / (98)풀매와 물맷돌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4.07.04 06:27
  • 호수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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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도 잘못 풀이한 낱말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어떤 낱말이 왜 그런 뜻을 갖게 됐는지 혹은 특정한 물건을 지칭할 때 하필이면 왜 그런 명칭을 붙이게 됐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더러는 옛 문헌을 통해 낱말의 변이 과정이나 확실한 유래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낱말도 많다. 그러다 보니 억지 유래를 만들어 유포시키는 사람들의 그럴싸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잖다.

그런 낱말 중의 하나가 어처구니라고 하겠다. 누가 처음에 지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설이 널리 퍼져 있다,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힐 때 어처구니없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됐다는 거다. 하지만 어떤 국어사전에도 어처구니 항목에 맷돌 손잡이를 뜻한다는 풀이는 나오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을 뜻한다고 되어 있으며, 다른 국어사전들의 풀이도 비슷하다. 국어사전에서 맷돌 손잡이를 이르는 말로 올라 있는 건 맷손이다.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를 뜻하는 낱말이라면, 옛 문헌에 그렇게 사용한 기록이 하나라도 나와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누구도 그런 기록을 찾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날 때가 많다. 나는 국어사전을 뒤적일 때 그런 경험을 자주 하는 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맷돌과 관련한 낱말들을 찾다가도 그랬다.

풀매: 풀쌀을 가는 작은 맷돌.

풀쌀이 어떤 쌀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물에 불린 쌀을 가는 데 쓰는 작은 맷돌이라고 풀이했다. 그제야 물에 불린 쌀을 풀쌀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은 풀쌀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을까? ‘무리풀을 쑬 무리를 만들기 위하여 물에 불린 멥쌀.’이라는 뜻과 풀을 만들 멥쌀.’이라는 뜻이 함께 올라 있다. 예전에는 널리 쓰이던 말일지 몰라도 지금 사람들에게 무리무리풀이 무얼 뜻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몇 명이나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여기서 그치면 좋겠으나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은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무리풀을 찾으면 무릿가루로 쑨 풀. 종이 빛을 희게 하려고 배접할 때 쓴다.’라는 풀이가 나온다. 다시 무릿가루를 찾으니 무리를 말린 흰 가루.’라는 풀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내 잘못이려니 하며 무리의 풀이를 찾을 도리밖에.

무리: 1. 물에 불린 쌀을 물과 함께 맷돌에 간 후 체에 밭쳐 가라앉힌 앙금. 2. 무릿가루로 쑨 풀. 종이 빛을 희게 하려고 배접할 때 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무리의 뜻을 먼저 확인한 뒤에 그와 연결된 다른 낱말의 뜻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래 낱말은 풀이 자체가 틀렸다.

물맷돌: 곡식에 물을 섞어서 갈 때의 그 맷돌.

언뜻 보면 물에 불린 풀쌀을 가는 풀매와 같은 종류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맷돌은 물레방아처럼 떨어지는 물의 낙차를 이용하거나 도랑으로 빨리 흐르는 물의 힘을 이용해 맷돌 위짝이 돌아가도록 만든 물건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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