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의 말은 다 옳았다. 단지 제거의 대상이 잘못되었던 것뿐이다.”
2차 대전당시 독일 총통 히틀러는 유대인을 상대로 인종말살(홀로코스트)이란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공공연히 히틀러를 찬양하는 말이 나오고 있다. 누구의 입에서? 놀랍게도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자손인 유대인들 사이에서다. 2019년 이스라엘에서 군인들을 교육하는 랍비가 이런 말을 하는 동영상이 세상이 폭로되면서 잠시 큰 파문이 일었지만, 그것은 특정 랍비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수의 유대 지식인들이 그 말에 조용히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랍비의 말도 전해졌다. “비유대인들은 유전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유대인의 노예로 사는 게 최선이다.” 이 또한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소위 ‘우생학’의 논리와 틀이 같다. 다만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홀로코스트의 최대 피해자이며, 이후 역사적 희생자 논리에 기대어 큰 혜택을 입기도 한 유대인 교육자의 입에서 과연 나올 수 있는 말인가. 그런데 이런 역설이 지금 이스라엘에선 통하고 있다. 나아가 그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 이 나라의 최대 권력을 쥐고 히틀러에 못지않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바로 인접한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이스라엘 총리 에르도안 네타냐후를 비롯한 각료와 정치인들, 세상이 ‘극우’라고 일컫는 이스라엘 지도부의 입에서는 지금도 히틀러를 동경하거나 그의 말을 복사한 듯한 광적인 선동적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같은 사람이 아닌 ‘인간동물’”(국방장관)이라든가, “가자지구의 인구를 소멸시켜야 한다”(재무장관)와 같은 말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후 가자지구에 군을 투입한 네타냐후 자신도 ‘여기서 민간인이라도 이스라엘군의 합법적 타깃이 될 수 있다’라며 노약자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에까지 가해지는 무차별 총격과 학살을 두둔하거나 독려하고 있다.
1년 전 이스라엘의 민간인 축제장을 피로 물들인 하마스의 행위는 (배경원인을 이해하더라도) 당연히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에 대한 응징을 내세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초토화 작전은 이미 도를 넘었다. 이를 구실로 이란 레바논 같은 아랍국들로 공격 대상을 확대했고, 누구도 뜯어말릴 수 없는 광적 만행은 가히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
잠시 관점을 바꿔본다. 오래전 자신들에게 가해진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이번에는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재현하는 듯한 이런 행동은 실로 참담하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역사는 조금이라도 진전될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이같은 답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자신이 학대받은 과거를 되풀이하고 그 학대자를 동경하며 따라하는 행위는 심리학 개념인 마조히즘(masochism, 또는 매저키즘)을 연상시킨다. 성적 대상으로부터 학대를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자학적 변태성애’다.
일찍이 변태성애의 심리를 분석한 정신분석학자 S. 프로이트는 마조히즘의 심리적 원인을 다음의 세 가지로 분석한 바 있다(1924년).
첫째, 고통과 함께 쾌락을 느끼는 ‘성애발생적 마조히즘’. 둘째, 스스로 무력한 존재로 취급당하면서 만족하는 ‘여성적 마조히즘’. 셋째, 스스로 결벽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이는 ‘도덕적 마조히즘’.
그리고 다시 우리 사회의 마조히즘을 돌아본다. ‘우리 할아버지들이 당했지, 우리가 당한 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일본을 왜 미워해야 하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간도 쓸개도 없는 어떤 미련퉁이가 했을까 싶겠지만, 소위 서울대 교수까지 지냈다는 지식인, 정치인들 가운데 실제로 이렇게 믿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나아가 일본의 식민지배 덕분에 우리나라가 근대화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자학적 역사관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마조히즘의 원인 중 주로 어느 항목에 속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자학적 역사관은 가까운 장래에 누구를 대상으로 삼아 또 다른 가학의 범죄를 충동하게 될까. 우리가 침묵하는 사이 이 병폐는 국민 정서에 은밀히 줄기를 뻗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보이지 않는 척 외면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