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史記) 염파 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에 진(秦)나라 소양왕이 조(趙)나라 혜문왕에게 우호를 위한 연회를 제안했다. 진나라의 위세에 겁이 난 혜문왕이 가기를 꺼려했는데, 명장군인 염파(廉頗)가 가지 않으면 조나라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상대부 인상여가 수행하도록 해서 보냈다.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에게 악기를 연주시키려는 등 조나라 왕은 치욕을 당할 뻔했는데 인상여가 용맹과 기지를 발휘하여 무사히 회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인상여의 공을 인정한 조나라 혜문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이에 지위가 염파보다 높아졌다. 염파는 자신이 조나라의 장수로서 나라를 위해 싸운 큰 공이 있는데 인상여가 말재간으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올랐다며 화를 냈다. 이를 들은 인상여가 갖은 핑계를 대고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 하고 늘 피해 다니니 인상여의 식객들이 비겁하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에 인상여가 말했다.
“막강한 진나라 왕도 욕보인 내가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나와 염장군이 있기에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호랑이가 싸우면 형세가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를 피하는 것은 나라의 급한 일이 먼저이고 사사로운 원한은 나중이기 때문이다.”
이 얘길 들은 염파는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하였고 둘은 서로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우정을 나누었다 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라는 말은 이같은 이같은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개인의 사정이나 이익보다 공공의 일을 우선시한다는 뜻이다.
15일 군의회에서 군의원들의 군정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할 군정의 최고 책임자인 군수가 사적인 일로 불출석함에 따라 결국 이날 군의회가 산회되는 파행을 겪었다.
이는 공적인 일을 우선시해야 할 공직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군민을 대표하는 군의회도 앞으로 다시는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